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노우에 가오루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. 1876년 [[운요호 사건]]과 강화도 조약 체결에서 일본측 협상 대표였고[* 국내에서 가끔 [[사쓰마 번]] 계열 인사인 이노우에 요시카(당시 해군 소좌, 운요호 함장)와 혼동되곤 하는데 둘은 전혀 관련이 없다. 운요호 사건이 발생했을 무렵 이노우에 가오루는 잠시 정계의 배후로 물러난 상태이긴 했으나 오사카 체제 성립에 기여하는 등 중앙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[[일본제국 해군|해군]]의 일개 [[포함]] 함장이 아니라 [[조슈 번]]의 실세이자 국가원로 대우를 받는 [[장관]]급의 고위인사였다.], [[갑신정변]] 후에는 조선 주재 일본 공사로 장기간 재임하기도 했다. [[청일전쟁]] 직후 [[미우라 고로]]에게 공사직을 넘겨주었다. * 돈 관계가 더러운 [[야마가타 아리토모|야마가타]], 여자 관계가 더러운 [[이토 히로부미|이토]], '''둘 다 더러운 이노우에'''라는 말이 있다. * 은혜를 입으면 이를 잊지 않는 의리있는 성격이라 [[타카스기 신사쿠]]의 자손, [[조슈번]] 번주 모리 가문, 생명을 구해준 의사의 자손 등을 잘 챙겨줬다고 한다. * 1864년 자객들에게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자, 고통을 견디다 못한 가오루가 형에게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을때, 가오루의 어머니가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끌어안고 이를 막았다고 한다. 가오루는 이후 기적적으로 회복했다고 한다. 이 일화는 일본 제국의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. * [[카츠라 타로]]와 사돈지간이다. 원래 이노우에 카오루는 딸인 치요코만 있어서 형의 아들인 카츠노스케를 양자로 들였는데, 카츠노스케도 자식이 없어서 '''치요코를 카츠노스케의 양녀로 보내고''' 대신 카츠라 타로의 3남인 카츠라 사부로를 [[데릴사위]]이자 양자로 들였다. 카츠라 사부로, 즉 이노우에 사부로가 사촌이면서 동시에 조카인 치요코와 혼인함으로서 2남 1녀를 낳았다. 그 중 1명이 일본의 고대사학자 이노우에 미츠사다(井上光貞)로 카츠라 타로의 친손자이자 이노우에 카오루의 외손자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